이 땅 위에서의 부활 / 진행 중인 부활

     프랑스의 수학자요 과학자요 사상가인 파스칼(Blaiss Pascal)은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꾸며낸 연극이라면 그 조작극을 위해 꾸며낸 사람들 스스로가 목숨을 바쳐가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한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많은 사람을 속일 수는 없다. 잠시 잠간은 속일 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에 하나 예수님의 부활이 가짜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확실하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뿐인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핵심이자 구원과 믿음의 핵심이자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독일의 신약성서 학자인 보른캄(Gunther Bornkamm)은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을 제거하면 신약성경의 복음서도, 바울의 편지들도, 오늘의 교회와 예배, 심지어 우리의 기도까지도 무용하다.”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빼고서는 감히 하나님과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고, 피흘리신 고난과 죽음을 통해 나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게 하신 부활을 통해 인간이 풀 수 없었던 영원한 숙제인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는 부활을 주셨고, 영생복락(永生福樂)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을 멸망에 이를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할 근거요, 성도의 정체성이자 성도가 전해야 할 복음의 중심이요, 가장 큰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시들고 죽어가던 신앙과 삶이 되살아났습니다. 자연재해와 가난과 내전과 잘못된 전통과 관습 등으로 고통받거나 죽음에 내몰리고 있는 흑암에 갇힌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제자들을 되살아나게 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놓일지라도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때 걱정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게 됩니다. 질병과 염려와 두려움과 죽음의 흑암이 걷힙니다. 절망이 소망이 되고, 고통과 슬픔이 평안과 기쁨이 됩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때 어떤 삶의 상황일지라도 버티고 넘어서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을 맛보고 누릴 수 있게 해 줍니다. 

     부활을 2000여 년 전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케케묵은 사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또 먼 훗날 일어날 미래 사건만으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나의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일어나는 현재 진행의 사건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활은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 그 진행 중인 부활의 권능과 은혜, 천국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 복음의 비밀을 터득한 사람,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맛보고 누릴 수 있습니다. 

     크라인벨(Howard J. Clinebell)이라고 하는 상담학자가 쓴 [웰빙(Well Being)]이란 책에서 네 가지 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Power Against, 공격력, 둘째, Power Over, 지배력, 셋째, Power For, 베푸는 능력, 넷째, Power With, 협력하는 능력 등입니다. 크라인벨이 첫째 둘째로 꼽았던 공격력과 지배력에서만 끝나면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곧 망합니다. 공격력과 지배력이 반드시 셋째, 넷째의 베푸는 능력, 협력하는 능력으로 나타날 때 Win Win의 결과가 있게 되고, 진정한 웰빙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 받은 수많은 은혜, 엄청난 은혜들에 대한 보답으로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봉사지수 곧 사회성 지수인 S. Q.(Social Intelligence Quotient)를 높이고, 크라인벨이 말하는 베푸는 능력, 협력하는 능력을 힘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회 수도사 출신의 가톨릭 신부이자 프랑스 관념주의 철학자인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1929년 북경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기독교가 불교와 같이 해탈을 설교하고 금욕을 말하지만, 기독교에서는 금욕이나 해탈보다 더 깊은 경탄을 이 땅 위에서의 부활에서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이 땅 위에서의 부활이란 나의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모든 아름다운 삶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주는 권능은 과거나 미래의 것만이 아닙니다. 현재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바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내는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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