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합니다. 아름다워 보이고 싶거나 건강해지고 싶어서입니다. 다이어트를 성공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 생활 습관의 변화, 즉 살 찔만한 습관을 과감하게 바꾸는데 있습니다. 둘째, 꾸준한 운동을 하는데 있습니다. 셋째, 다이어트 식단을 짜서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몇 가지 상식을 철저하게 지키면 됩니다.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을 달리 말하면 단련, 훈련입니다. 육체의 훈련을 꾸준히 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고, 활력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8절에 의하면 “육체의 연단, 곧 단련,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훈련이 우리에게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신의 건강이란 유익을 가져다주지만, 경건의 훈련은 육체의 훈련에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유익, 곧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다음 세상과 영원토록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잘 훈련해야 경건에 이를 수 있습니다. 경건을 어떻게 훈련하느냐, 경건을 어떻게 이루어 가느냐가 과제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것, 자손을 낳지 않는 것, 성욕, 욕망을 끊어버리는 것 등이 경건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만이 아닌 여자까지 지으신 것은 그 둘로 짝을 지어주기 위함입니다.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입니다. 채소만 먹고 동물성, 곧 지방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경건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3절로 4절에 “3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입니다. 우리 삶의 주변, 지천에 흔하게 깔려 있는 민들레의 경우는 많이 쓰면 독성이 있어서 그렇지, 최고의 항암제 중의 하나입니다. 알고 보면 버릴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입니까? 물질을 취하는 사람입니다. 물질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물질이든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으로서 선한 것이므로, 감사함으로 받아, 잘 취하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감사함으로 취하고, 남용, 악용하지 않고 바르게 취하는 것이 경건, 영성의 한 요소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살펴보면, 영성의 발전 과정, 더 높은 경건에 이르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출생을 주후 1년으로 추정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사건이 주후 30년이고, 그 사건의 3년 후, 곧 주후 33년에 바울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회심한지 20년 후인 주후 53년경에 제1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즉 예수님을 만난 지 20년이 지난 후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 15:9)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최고의 사도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책망하고, 다른 사도들을 책망 했었습니다. 그런데, 회심한지 20년이 지난 후, 자신이 사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임을 깨닫고서 그와 같은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와 같은 고백을 한지 6년이 지나 주후 59년경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서를 쓸 때에는 “나는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 3:8)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유언 당시인 주후 64년경, 네로 황제에게 순교를 당하기 직전에 쓴 디모데전서에서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딤전 1:15)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그와 같은 고백들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영성의 깊어짐, 영성의 발전, 더 높은 경건에 이르는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계 역사를 바꾼 하나님의 대사도로 사역하면서 영성의 최고봉에 올랐을 때에 자신의 존재가 가장 밑바닥에 놓인 존재임을 발견하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높음이 아닌, 자신이 가장 낮은 존재인 것을 깨닫고 깨달은 바를 삶에 이루어 갈 때에 비로소 깊은 경건, 깊은 영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형상을 닮고,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흔적을 남길 때에 깊은 경건, 깊은 영성에 도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