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심은

     마귀를 헬라어로 디아볼로스(διάβολος)라고 합니다. 디아볼로스에서 디아(δια)는 '사이에'라는 뜻이고, '볼로스'(βολος)는 '갈라놓는다' 는 뜻입니다. 마귀라는 말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사이에 틈을 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거짓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마귀는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를 갈라놓습니다. 좋은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 먹게 한 이후에 나타난 현상은 분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분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탓을 돌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열,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입니다. 세계 역사, 공동체, 가정, 개인의 삶 안에 일어나는 모든 다툼과 분열의 배경에 어김없이 마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톨스토이(Leo Tolstoy)가 쓴 [재난의 원인]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쪽 집 닭이 담을 넘어 저쪽 집에 가서 알을 낳고 꼬꼬댁하고 나왔습니다. 이쪽 집 아이가 "우리 집 닭이 너희 집에 계란을 낳았으니 가져오라" 했습니다. 그 집 아이가 들어가 보더니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끼리 '알이 있다, 없다'하고 싸우다, 엄마들이 나서서 싸우고, 급기야 아버지들까지 싸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저쪽 집에 불을 질러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바람이 휙 불면서 저쪽 집만이 아닌 이쪽 집까지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두 집 사람은 그날 밤 잿더미에 앉아서 별을 보며 후회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나?' 하고 생각해 보니 계란 한 알 때문에 그 지경이 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까? 사람들은 별것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서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는 영의 사람입니다. 이 세상과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내기 위해 싸워야 할 전쟁터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성도가 무엇을 놓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임시적이고 썩어져 사라질 비본질의 것들인 육과 물질을 놓고 그것들을 위해 싸우고 있고,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도록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렁에 빠져 탈진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은 잠시 머물 곳입니다. 잠시 머물 이 세상이 아닌 본향 하나님의 나라에 삶을 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햇볕이 뜨겁던 어느 날 아브라함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다가 몹시 지친 한 나그네를 보고 권했습니다. "집에 가서 씻고, 먹을 것을 드릴 테니 쉬어 가십시오." 아브라함은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에게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드십시다." 하며 같이 감사 기도할 것을 권했지만, 그 나그네는 "나는 페르시아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소!"라며 기도를 거절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지도록 계속 기도를 요청했으나 거절하자 화를 버럭 내며 그 나그네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아브라함아!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글쎄, 저놈이 주님께 감사할 줄 몰라 제가 쫓아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조용히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그를 위해 50년을 참았단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네게 인도했는데, 너는 그만 10분을 참지 못해 일을 망쳐버렸구나!“

     한스 큉(Hans Kung)은 "가톨릭 교회는 복음을 변질시켜 죄를 범했고, 개신교회는 교파를 분열시켜 죄를 범했다."라고 했습니다. 나의 삶에도 이런저런 다툼과 분열들이 있지 않습니까? 다툼과 분열은 마귀의 역사이며, 반면에 하나 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평안합니다. 마음이 나누어지면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 거리가 되고, 염려거리가 됩니다. 가정의 평안, 생업의 평안, 교회의 평안은 마음이 하나 될 때 이루어집니다. 고 한경직 목사는 ‘교회는 싸우지만 않으면 부흥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짧고 단순한 한 마디 말이지만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용광로(melting pot)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죄로 가득 찬 옛사람, 하나 되지 못하고 다투고 분렬하게 하는 내가 완전히 부서지고, 녹아지고, 죽어져야 새롭게 된 나, 하나를 이루는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내가 죽으면 나를 괴롭게 하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많은 문제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천국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심은 언제 어디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과 하나를 이루고,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해 한이 없는 인자와 긍휼과 사랑으로 오래 참으셨고 앞으로도 참으십니다.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새해 2025년을 맞습니다. 새해를 어떻게 시작하시렵니까? 신령한 복을 받고 하늘에 속한 나 역시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 기다리면서 서 있는 삶의 자리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평안의 줄, 평화의 띠로써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인 하나 됨을 온전히 이루는 주인공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댓글
* 이메일이 웹사이트에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