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

     평소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던 학생이 어느 날 지각하자 선생님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 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동전을 떨어뜨려 그걸 찾느라고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동전을 찾아드리는 것도 좋지만, 학교 오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미안하다 말하고 학교에 와야한다 일렀더니, 소년은 자기가 그 동전을 밟고 있어서 올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그 동전을 발로 밟고서 아저씨가 찾기를 포기하고 갈 때까지 동전 찾는 시늉을 하느라 지각했던 것입니다. 소년은 그렇게 해서 그 동전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가만히 서 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까? 

     하버드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대만 출신의 멍화린 교수의 책 [10일 안에 변신하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하라사막 서쪽 한 작은 마을이 있는데 레빈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을 방문하기 전에는 전혀 개발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한 번도 사막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레빈은 삭막한 사막을 떠나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물었더니 어디로 가든 결국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레빈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북쪽을 향해 걸었고, 3일 만에 사막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마을 청년 한 명을 데리고 그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 보았습니다. 밤낮 열흘을 걸었지만 11일째 되는 날 다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사막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아무도 북극성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레빈은 다시금 청년과 함께 낮에는 휴식하고, 밤에는 북극성을 따라 걸어 사막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청년은 사막의 개척자가 되었고, 그 마을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졌습니다. “새로운 인생은 방향을 제대로 찾을 때 시작된다!” 

     나 자신도 갇혀있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바른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담대하게, 그리고 꾸준히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말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 깨달은 숭고한 신앙과 가치를 따라 살지 않으면,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그리고 작년과 같은 올해, 올해와 같은 내년이 되어 지나쳐왔던 과거의 삶과 같이 앞으로의 남은 삶도 똑같이 지나가 버려 결국 인생이 허무한 파장으로 끝나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바른 방향, 바른 목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시라도 잊지 말고 삶에 적용해야 할 대명제의 말씀이 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하여 주시고, 거듭난 새 생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새로 지음 받은 나의 존재 이유요 목적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받은 복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것은 받은 복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초대 교회 때 교회는 세상을 위한 자동 온도 조절 장치였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그저 온도계의 역할을 할 뿐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세상의 온도만 나타낼 뿐, 자동으로 온도 조절을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거나 되어가고 있음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와 같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는 온 힘을 다하여 세상 사람들이 멸망으로 치닫는 죄에서 구원받고 거듭난 새사람이 되고, 하늘에 속한 자로 사는 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이유와 목적이요, 먼저 구원받은 이유요 목적이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입니다. 

     교회, 목회자, 성도의 궁극적인 가치는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하늘에 있습니다. 내가 부하거나 가난하다는 것, 건강하거나 약하다는 것, 높거나 낮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삶의 상황에서든지 죄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성공하고 승리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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