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단체에서 미스터 모범 남성을 선정하기로 해서 접수를 했더니 수 만 통이 접수되었습니다. 그중 자기소개서를 보고 가장 좋은 모범 자를 선정했습니다. 자기소개서를 보니까 술도 담배도 여성문제도, 여성을 구타하는 일도 없고,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주일날은 틀림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런 생활을 7년째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모범적입니까? 너무 괜찮아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여기는 안양교도소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참담하기 짝이 없는 라오디게아교회가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을 빗 된 하나의 우스개, 풍자입니다.
예수님은 계 3:17에서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의 라오디게아라는 도시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상거래가 활성화된 곳이었고, 돈이 많아 금융업이 성행했으며, 금융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검은 양모 의류 사업으로 최고 품질의 피복을 생산했고, 의과대학이 있어 이름난 안약을 많이 생산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 곧 외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내적인 것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내면을 보시고는 외적으로 부유하지만 영적 실상은 가난하고, 검은 양모로 만든 최고 품질의 옷을 입었지만 영적 실상은 헐벗었고, 효과가 뛰어난 이름난 안약이 생산된 곳이었지만 영적 실상은 눈 먼 상태, 곧 영적 시각 장애 상태,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지적하고 책망했습니다. 그처럼 라오디게아교회는 겉으론 부요한 것 같으나 실상은 가난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갈망을 모두 상실하고 미지근한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아성찰의 능력까지 상실했습니다. 인생의 커다란 불행, 비극은 자신을 돌아 볼 능력을 잃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렇게 된 원인을 외적인 풍요가 그들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여 자신을 살피는 눈을 가리게 한 것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세상에서 기독교를 박멸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물질적 풍요와 편리 속에서 안주하게 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소리 없이 사라져 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입니다. 외면만을 보고 결혼한다면 엄청난 낭패를 볼 확률이 많습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속 심령, 즉 내면, 인격입니다. 목회하면서 두려운 마음을 갖고 긴장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겉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속, 곧 중심, 내면을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부와 풍요와 편리, 좋은 상황 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부를 잘 쓰고 누리면 큰 복이 되지만 잘못 쓰고 누리면 오히려 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부와 풍요와 편리, 좋은 상황이 우리의 믿음 아래 놓여 잘 다스려지고, 영적으로 쓰이고 아름답게 쓰여야 하는데, 오히려 믿음 위에 놓이게 되면 믿음은 사라지고 그것들을 남용하고 오용하면서 죄악 속의 삶을 살게 됩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구원받은 과거가 있고, 예수님의 복음 위에 세워졌지만 세월이 지난 현재에 와서 세속화되고 변질하였습니다. 현재의 물질적 부와 편리 속에서 영적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의 실상(實像)은 어떻습니까?
계 3:18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했습니다. 은행에 쌓아둔 금, 돈이 아닌 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부요해지라고 말씀합니다. 최고의 품질로 유명했던 양모가 아닌 흰옷 즉 경건의 옷, 거룩함의 옷, 의의 옷을 입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지역 특산품 안약이 아닌 성령의 통찰력으로 자신의 내면, 영적인 실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권면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 3:19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했습니다. 열심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태가 열심이 회복된 상태입니까? 다시 주님이 라오디게아교회와 성도들을 쓸 수 있는 상태에로의 회복을 가리킵니다. 회개는 단순한 뉘우침이 아닙니다. 회개의 목표는 회복입니다. 주님께서 맘껏 쓰실 수 있도록 본래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재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부하든 가난하든, 우리의 현재의 삶이 그 어떤 상황에도 좌우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이루고 있느냐,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서머나교회를 향해 계 2:9에서 “네가 궁핍한 것 같으나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인간적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대단하지 못해도 우리의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그와 같은 말씀을 들려주실 때,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크게 성공한 교회요 인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