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관계,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것, 바른 것이 바로 구원받은 증표요 구원받은 상태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 그리고 사람 상호간의 좋은 관계, 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 먹게 한 이후에 나타난 현상은 분열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분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탓을 돌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열,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입니다. 세계 역사, 공동체, 가정, 개인의 삶 안에 일어나는 모든 다툼과 분열의 배경에 어김없이 사탄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답게, 하늘에 속한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목적에 걸맞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신 목적을 에베소서 4장 1절로 4절에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함으로, 평화의 띠로써 서로를 묶음으로 하나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관계가 깨지는 아픔을 겪을 때마다 반드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네 가지 현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중에 누군가가 겸손하지 못했고, 온유하지 못했고, 오래 참지 못했고, 용납하지 못했음에 있습니다. 프랑스 시인 잔 포엘은 "남을 용납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지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되지 못하는 다툼과 분렬이 있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비본질적인 것을 갖고서 우리로 하여금 다투게 하고 분열하게 합니다. 우리는 영의 사람입니다. 이 세상과 물질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어떤 전쟁터입니까? 영적인 삶을 살아내기 위해 싸워야 할 전쟁터입니다. 그것이 본질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성도들이 무엇을 놓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임시적이고 썩어져 사라질 비본질의 것들인 육과 물질을 놓고, 육과 물질을 위해 싸우고 있고,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도록 소모하고 있습니다. 수렁에 빠져 탈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본향인 하나님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이 세상에서 그저 나그네일 뿐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은 잠시 머물 곳입니다. 삶을 걸어야 할 곳은 잠시 머물 이 세상이 아닌 본향 하나님나라입니다.
이스라엘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햇볕이 뜨겁던 어느 날 아브라함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중 몹시 지친 한 나그네를 보게 되었고, "집에 가서 씻고, 먹을 것을 드릴 테니 쉬어 가십시오."라고 권했습니다. 함께 집에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음식을 차려놓고 나그네에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음식을 드십시다." 하며 함께 기도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나는 페르시아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소!"라고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갖도록, 그리고 함께 기도하기를 계속 권했습니다. 나그네가 끝내 거절하자 아브라함이 화를 버럭 내며 그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대답했습니다. "글쎄, 저놈이 하나님께 감사도 기도도 하지 않기에 제가 쫓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조용히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그를 위해 50년을 참았단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네게 인도했는데, 너는 그만 10분을 참지 못해 일을 망쳐버렸구나!“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예민하고 흥분하는가? 영적인 것을 위해 그러한가? 아니면 육적인 것, 물질 때문에 그러한가?를 늘 점검하고 진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도하며 헤아려 깨닫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대화를 함으로 다툼과 분열,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나누어지면 문제가 아닌 것도 문제 거리가 되고, 염려거리가 됩니다. 가정의 평안, 생업의 평안, 교회의 평안은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집니다. 고 한경직 목사는 “교회는 싸우지만 않으면 부흥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부부, 부모 자녀, 생업, 인간관계 등 모든 것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 이웃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 됨은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용광로이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죄로 가득찬 옛 사람, 하나 되지 못하고 다투고 분렬케 하는 내가 완전히 부서지고, 녹아지고, 죽어져야 새롭게 된 나, 하나를 이루는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괴롭게 하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많은 문제들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천국이 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 입은 일인 하나 됨을 이룰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