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신약성경 27권 중 약 13권을 기록한 저자입니다. 그 열세 권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주 안에서”입니다. 나의 삶에 작고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내가 주 안에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살면 모든 문제가 사라집니다. 반면 주 안에서 살지 않으면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주 안에서 살면 천국의 평강을 누립니다. 반면 주 안에서 살지 않으면 번뇌에 에워 쌓이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목표나 행복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한순간 우리를 기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일 뿐입니다.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삶은 끊임없이 염려와 불평과 불안과 실망으로 이끕니다. 돈을 갖고서 최고 재질의 값비싼 침대를 살 수 있지만, 달콤한 잠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을 갖고서 약을 살 수는 있지만, 건강 그 자체를 살 수는 없습니다. 돈을 갖고서 겉은 화려하게 꾸밀 수 있지만, 내면의 기쁨과 즐거움은 만들 수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17 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고백했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요소조차 없는데 어떻게 그와 같은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주 안에 거할 때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라는 말씀처럼 심령이 부유하고, 만족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해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시련과 역경이 일시적 과정일 뿐이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해당하는 그 어떤 위험과 위기 속에서도 주 안에 있는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어 보호해 주실 것임을 알기에 낙망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아니한다 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치면, 세상의 근심, 걱정, 문제들이 나를 흔들지 못합니다.
기도라는 말과 간구라는 단어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기도란 말은 ‘프로슈케(προσευχῇ)’라는 헬라어로서 '하나님을 바라본다', '하나님께 향한다'는 뜻입니다. 간구란 말은 ‘데에세이스(δεήσεις)’라는 헬라어로서 '필요한 것을 요청하다', '도움을 요청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기도란 먼저 내 눈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심령이 하나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던 시각, 이런저런 세상적 방법을 기웃거리던 시각이 전능하신 하나님,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문제의 해답을 갖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비로소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엇을 바라보십니까? 문제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문제란 괴물은 바라볼수록 생각할수록 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볼수록 묵상할수록 문제는 작아집니다. 그러므로 문제로 향하던 시각을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오. 문제 앞에 불안해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구하십시오. 깨닫고 보면 응답과 평안의 근원은 환경이나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바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하나님 입장에서 최고의 보물은 당연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보물인 독생자를 나에게 주셨기에 그 외의 것을 주시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일도 아닙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최고의 보물인 예수님을 가진 최고의 부자요 최고의 행복자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망각하고, 최고의 부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주 안에서란 말은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주 안에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고,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삶의 작고 큰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이 주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인생의 종착역에서 육적인 복, 세상에서 복을 아무리 많이 받았다 해도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은 작고 큰 허물이 많지만, 내가 이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라고 변호해 주시면, 나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써 아무 문제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늘 점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은 내가 주 안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느냐, 있지 않느냐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