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부들은 ‘평’자와 ‘등’자를 좋아하는데, ‘평’자는 아파트 평수의 평자고, ‘등’자는 아이들 학교 등수의 등자를 의미합니다. 한국 가정의 가치가 큰 집을 사는 것과, 자녀들의 신앙이나 인격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아니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들의 학교 성적을 올리는 데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흔들리거나 무너져 가고 있는 한국 교회와 이민 한인 교회의 문제가 바로 그와 같은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에 파고들어 교회를 세속화하는 데 있습니다. 진정으로 born again, 거듭나지 못한 모습, 깨지지 못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속화된 교회의 현실, 성도들 삶의 현실에서 절실한 필요는 예수님께서 달린 십자가의 의미와 능력과 예수님 달린 십자가가 요구하는 바를 깨닫고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달린 십자가에는 멸망에 이를 죄에서 구원하는 의미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꺼리고 저주 중의 저주로 여기는 십자가, 가장 무력한 것이요, 말도 안 되는 가장 미련한 것으로 여기는 십자가로서 인류를 구원하는 대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는 나를 살리기 위해 단 하나뿐인 자식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신비롭고도 놀라운 사랑, 인간의 이성으로 도무지 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사랑, 한량없는 사랑은 태산 같은 나의 모든 죄, 오고 가는 인류의 모든 죄를 완전하게 사하고도 남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한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어린 아들이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교회에 가니까 커다란 더하기 표가 있는데 왜 교회에 더하기 표를 붙여 놓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네가 잘 보았다. 네 말이 맞다. 우리 예수님은 더하기를 참 잘 하시는 분이시란다. 예수님과 그 누구든지 더하여지면, 하나님이 더하여지고, 구원이 더하여지고, 천국이 더하여지고, 영원한 생명이 더하여지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이 더하여지지.”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님 달린 십자가는 구원이라고 하는 새 출발 지점에서 지속적인 아름다운 변화를 요구합니다.
예수님 달린 십자가를 통해 구원, 거듭남을 경험할 때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이 생명이든, 건강이든, 자녀이든, 물질이든, 재능이든, 친구이든 이제 더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잠시 맡겨 놓은 것이구나!,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욕망의 노예, 물질의 노예, 향락의 노예에서 자유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병원에서 환자들이 수술을 하면 마취과 의사들이 수술 전에 마취를 합니다. 간혹 어떤 때는 마취가 잘되지 않아 환자가 통증을 느낍니다. 그때 의사가 “아직 덜 죽었네.”라고 말합니다. 살면서 고민도 많고, 상처도 많고, 믿음도 잘 자라지 않고, 아름다운 변화가 없는 것은 아직 덜 죽었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제목이 있다면, “하나님 늘 악한 내가 죽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악한 나를 죽여 주옵소서.”입니다. 예수님 달린 십자가를 보거나 떠올릴 때마다 나 자신이 죽고, 깨어지고, 낮아지고, 비워지고, 아름답게 변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 달린 십자가에서 죽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구원과 구원 이후에 아름다운 변화를 이루어 갈 때 모든 삶에 치유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실패와 좌절 가운데 놓인 사람들, 암담한 가운데 놓인 사람들, 모든 사람이 떠나가고 절대고독에 놓인 사람들, 고아와 과부와 독거노인들, 가난이나 질병 가운데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조건은 우리가 처한 삶의 형편이나 상황과 상관이 없습니다. 신분이나 학식이나 소유의 정도와 전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죄 많고, 보잘 것 없고, 지쳐있고, 외롭고, 연약한 사람일수록 더 잘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달린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으로서 모든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고, 혐오하며, 회피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십자가는 가장 참담한 가운데 놓여있는 인생을 만나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무력해 보이고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은 십자가처럼 나의 삶이 곤두박질치며, 처절함 가운데 놓여있을 때, 많은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갈 때 오히려 나를 만나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