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개신 교회의 다섯 솔라라는 것이 있습니다. 솔라는 ‘오직’이란 뜻의 라틴어이며 우리 신앙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가리키는 이 다섯 솔라는 종교를 개혁하면서 사용된 표어이고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 짓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다섯 솔라는 다음과 같습니다.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기독교 신앙의 모든 권위는 성경에 있다는 의미 입니다.오직 그리스도 (Sola Christus) 즉 구원의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의해서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 입니다.오직 은혜 (Sola Gratia)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을 얻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고, 우리의 어떤 조건에 의한것이 아님을 의미 합니다.오직 믿음 (Sola Fide) 즉 우리의 구원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믿음만으로 얻는 것임을 의미 합니다.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모든 영광은 교황도 목사도 황제도 아닌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한다는 뜻으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하나님께서 완성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한다는 의미 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확증해 줍니까? 네 성경은 분명하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요한복음 3:16~18>우리가 가장 잘 아는 성경 구절, 절에 다니는 중들도 암송한다는 성경 구절은 영생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온다고 선포 합니다.특히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그리고 에베소서 등을 통해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으며 그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까지 자세하게 정리해 놨습니다.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로마서 3:20~24>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어떤 원리를 갖고 있습니까?
천국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의로운 자가 들어갑니다. 천국은 의로운 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수 없게 되었습니다.하나님에게는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구원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공의는 죄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이 왜 인간을 지옥에 보내냐고 질문하고, 그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운 분인지를 모르는 것 입니다.문재인 대통령이 자기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이를 눈감아 주고 권력을 사용해서 무죄로 풀려나게 한다면 여러분은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인간을 지옥에 보내신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욕하거나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무죄로 풀려나게 하는 권력자 같지 않다는 이유로 욕을 하는 것 입니다.죄를 지은 사람들은 처벌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그 죄를 저지른 아들이 “나”라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라는 것 뿐 입니다. 그들을 처벌하는 것은 공의로운 것 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에 맞는 삶을 사셨고, 전혀 죄를 짓지 않으셨으며 죽지 않으시고 영생하셔도 되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인간의 죄에 대한 처벌에 내어 놓으셨습니다.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이사야 53:4~5>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우리 때문에 받지 않으셔야 하는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죄에 대한 공의가 채워졌고 이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가 자기 혼이 해산의 고통을 치른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기리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 그가 그들의 불법들을 담당하리라. <이사야 53:11>이제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생겼습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 분이 나의 죄를 짊어짐으로 그 분이 우리의 불법들을 담당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기회가 생겼습니다.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어 원래 십자가에 달려야 했던 것이 나였는데, 예수님이 내 대신 달리셔서 내 죄의 댓가를 치루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죄로 인해 사탄의 종이었던 나를 핏값으로 사오신 예수님께 내 삶을 드려 왕이 되게 하시는 것 입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갈라디아서 2:20>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모든 것을 이루시고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도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내가 살인을 저질러도 나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죄를 저질러도 나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어 의에 이르렀다면 말입니다.많은 분들이 이 복음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윗이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십니까?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던 그리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던 사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성령의 감동으로 많은 성경 특히 시편을 기록한 사람입니다.하지만 그는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밧세바가 잉태를 하자 그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신 우리야를 죽여버립니다. 그는 간음한 자요, 살인자 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살인을 하면 지옥에 가야 했다면, 다윗은 지옥에 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범죄 이후 다윗의 고백은 시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보소서, 내가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 <시편 51:5>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깨끗하게 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 <시편 51:7>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내가 죄를 갖고 태어났으니 하나님께서 내 죄를 씻어 주시기를 구하며 그렇게 씻어 주신다면 죄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고백을 합니다.만약 여러분이 진짜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범죄를 저지르셔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이것이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자유가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의로워진 여러분은 마음껏 죄를 지시겠습니까?
로마서 1장에서 5장까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을 수 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하나님께서 범죄를 넘치게 하여 은혜가 더더욱 넘치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 사도 바울은 6장에서 특이한 질문을 던집니다.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로마서 6:1>사도 바울이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자신이 설명한 복음 즉 제가 위에 언급한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로 믿어 의롭게 된 사람들은 살인을 해도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러면 저는 계속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겠네요?” 라고 질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어떤 이단들은 실제로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깨달았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모두 사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사셔도 구원을 받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회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껏 죄를 짓고 사십시오.”하지만 사도 바울은 죄를 마음껏 지어도 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로마서 6:2>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내가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죄가 나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왕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왕은 그 죄를 미워하고 전혀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한 헌신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나님도 나를 사랑하십니다.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죄를 지으려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죄 가운데 거하겠습니까?성령께서 내 안에 계십니다. 그 분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보혜사 이십니다. 나를 위해 중보하시며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그때에 내가 정결한 물을 너희 위에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되 너희의 모든 더러움과 너희의 모든 우상으로부터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라. 또 내가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 살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너희에게 살로 된 마음을 주리라. 또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내 법규 안에서 걷게 하리니 너희가 내 법도를 지켜 행하리라. <에스겔 36:25~27>하나님은 구원 받은 자들을 정결하게 씻을 것이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실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하나님의 법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실 것 입니다.우리는 이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 나갑니다.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갈라디아서 5:16~18>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나는 마음껏 죄를 지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에 의해 정결해 진 나의 영이 그 죄를 너무도 괴로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을 닮아 가는 나는 하나님과 같이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죄인이고 아직도 알게 모르게 죄 된 행동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죽을 때 까지 죄를 지으며 살 수 밖에 없을것 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죄를 하나 하나 죽여가고 있으며 죄와 싸워 나가고 있습니다.싸우다 지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합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전진해 나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죄에 대항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물론 제 안에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도 동시에 있습니다. 달콤한 죄의 유혹, 죄 된 생각, 상상, 그 것이 너무 그립고 그 것이 없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그리고 사도 바울도 같은 마음이 있었던것 같습니다.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나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들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서 7:21~24>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 합니다.이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20>풀어서 설명을 드리면,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주신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의 죄 된 육신에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있다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사망의 몸이라고 지칭하며 이 죄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망의 몸을 가진 나를 비참한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몸을 가진 사람은 사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25>
많은 분들이 야고보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행위가 반드시 동원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내 형제들아, 사람이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야고보서 2:14>하지만 이는 야고보서의 전체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2장에서 율법으로의 구원 즉 행위로의 구원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야고보는 2장 10절에서 율법을 전체를 지키다가 하나라도 어기면 모든 것을 어긴 죄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우리에게 ‘자유의 법’이 있다고 말합니다.즉 야고보는 율법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며 우리에게 행위가 보태져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유에도 불구하고 너희에게 믿음이 있는지를 행위를 통해 보이라고 촉구하고 있을 뿐 입니다.야고보 사도는 계속해서 믿음을 강조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절 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서… 라고 시작 하며 야고보서 2장에서만 믿음이란 단어를 13번이나 사용 합니다.그는 아브라함이 제단 위에서 이삭을 바치려고 했음을 예로 들어, 아브라함이 믿었기 때문에 행할 수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타고 있는 차가 절벽에서 떨어지리라는 것을 100% 확신한다면 그가 죽으려고 하는게 아닌 이상 차에서 뛰어 나오는 행위를 보여줄 것 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먹고 있는 밥에 독이 들어 있다는 것을 100% 확신한다면 그가 죽으려고 하는게 아닌 이상 그 밥을 먹지 않는 행위를 보여줄 것 입니다.즉 야고보는 너희의 행위를 보여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행위를 통해 너희를 구원에 이르게 한 믿음이 있음을 보여주라는 것일 뿐입니다.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사도 바울 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기 위해 열심을 부렸던 최고의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모든 죄가 오직 믿음으로 용서 받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도 아무 문제 없이 영생을 얻었음을 알고 있습니다.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이 세상 삶을 다 바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왜 입니까?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구원을 못받아서 입니까?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것 같아서 입니까?그는 자신의 열심을 이렇게 설명합니다.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기 때문이라. <고린도 후서 5:14a>우리 주위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 놓습니다. 왜 입니까?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소망없던 죄인이었음을 믿고 비참한 나를 하나님이 값없이 용서해 주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셨고, 하나님이 나를 자신의 아들을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내가 하나님 전하고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영생을 얻는다고 확신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열심을 부리는 이유는 무언가를 더 얻거나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하나님을 전하고 많은 이들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을 주어 나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속였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에게 무언가 뜨거운 것이 있어서 말을 하지 않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그분에 대하여 언급하지 아니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내 뼈 속에 사무치니 내가 참기에 지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도다. <예레미야 20:9>
많은 사람들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교리가 사람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싸구려 복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거짓말 입니다.복음은 절대로 싸구려가 아닙니다. 복음은 값 없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외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나님의 값 없는 은혜 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값 없는 은혜,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즉 진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를 나의 왕으로 전심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왕 되신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의 사랑을 강권하기 때문입니다.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느니라.<로마서 5:3~6>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로마서 8:3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