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에 휘말려 죽음으로 치닫는 인생에게 탄탄한 생명의 밧줄이 던져져서 구사일생으로 구출될 때에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그것 이상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닥치는 수많은 고난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무기력하게 빠져들거나, 소망이라고는 없는 인생의 캄캄한 골방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심히 괴로워 할 때에 유일하게 내 곁에서, 나의 아픔을 어루 만지시며,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금세기 초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미국인 음악가요 지휘자인 '아루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3/25~1957.1/16)입니다. 그는 본래 첼로 연주자였는데, 심한 근시로 인하여 연주 시간에 제대로 악보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떠한 연주곡이든 악보를 미리 다 외워야만 했습니다.
중요한 연주회가 있던 어느 날, 악단의 지휘자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들 중 누군가에게 지휘를 부탁해야만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악보를 몽땅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 지휘를 대신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지휘자로 발돋음 하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구라파 출신의 한 첼로 연주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악보를 외워야만 했었고, 그것이 세계적인 지휘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토스카니니의 회고록에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어려울 때에 힘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아담은 에덴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눈물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자. 눈물이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더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때일수록 가까이에 오셔서 보호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조선의 최초 선교사였던 언더우드의 기도 노트에 기록된 “걸을 수만 있다면” 이라고 하는 시를 제가 다시금 축약 변경하여 전해드립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설 수만 있다면, 들을 수만 있다면, 말할 수만 있다면, 볼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지금 그렇게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다 지닌 체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던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자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가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를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 있으십니까? 비슷하면서도 반대인 또 다른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별 생각 없이 예라고 쉽게 대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성 어거스틴은 앞의 두 질문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올바르게 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생각, 올바른 삶은 어떠한 어려움의 상황 속에서도 절망을 반드시 희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잠잠히, 묵묵히 바라보고, 언제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