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가 이끌었던 대한민국 축구팀이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세계 4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그 열풍이 계속되었습니다. 많은 회사에서 히딩크식 경영방법을 말하고, 그의 리더십을 배워 경영에 적용했습니다. 히등크의 축구팀 경영방법은 기초훈련, 체력훈련이었습니다. 기초훈련, 체력훈련은 준비를 잘하고자 함입니다. 히딩크는 줄타기식 선수, 낙하산식 선수, 유명세를 갖고 있는 선수의 선발이 아닌 잘 훈련되고, 준비된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성도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신 앞에서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지 않고, 즉 변화되지 않고, 잘 준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역사나 복이 없다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아무리 불평하고 원망해도 정리할 것을 정리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와 복은 없습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 아름답게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자기가 죽지 아니하면 변화는 없습니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산다는 것은 고통이 뒤따릅니다. 육체의 소욕은 육체에 달콤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에 쓴 약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은 당장에 좋으나 나중에는 큰 아픔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반면 성령의 소욕,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은 육체적으로 귀찮고 피곤한 듯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가져옵니다. 마치 시험을 앞둔 학생이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힘들지만, 힘든 것을 참고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공부가 힘들다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보나 마나 형편없는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다니고, 예배드리고, 종교적인 행사에 참여하면 다 된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형식적인 신앙생활, 습관적인 신앙생활, 마음의 안정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는 신앙생활, 자동차 보험, 집 보험, 생명보험 같이 천국에 가기 위한 일종의 보험 장치 같은 것으로 여기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신앙생활은 그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변화들이 일어나야 하고, 그 변화는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변화는 진정한 신앙생활의 증표입니다. 삶의 가치관과 목적의 변화, 인격의 변화, 마음의 생각과 언행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어느 날 사람이 철든 말, 성숙한 말을 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지적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됩니다. 무뚝뚝하고 냉랭했던 사람이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됩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몰랐던 사람이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했던 사람이 자신을 감추고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히 봉사하고 헌신합니다. 자신의 탐욕만을 채웠던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고 선한 일에 힘씁니다. 바로 그와 같은 아름다운 변화가 뒤따름이 진정한 신앙생활입니다.
정용철 시인의 시집인 《마음이 쉬는 의자》에 나오는 “걸어 나오기를”이라 하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들려드립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착역에서 당신이 걸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절망과 좌절에서 걸어 나오기를
미움과 증오에서 걸어 나오기를
불평과 불만에서 걸어 나오기를
열등감과 우월감에서 걸어 나오기를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걸어 나오기를
우울과 무력감에서 걸어 나오기를
부정적인 생각과 허무에서 걸어 나오기를
당신의 문은 안으로 잠겨 있기에 사람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걸어 나오는 일은 당신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로부터 걸어 나오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늘 설레는 것은 걸어 나오는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답습니까? 점점 더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 처음보다 나중이 더 나아지는 사람입니다. 시들한 믿음, 죽은 믿음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반면 살아있는 믿음에는 반드시 변화가 뒤따릅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면 잘못 믿은 것이 됩니다.
엊그제 시작했던 2022년이 어느덧 반년이 다 되어가는 6월에 이르렀고, 새로운 반년이 시작되는 7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믿음의 옷깃을 여미고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달려가는 남은 반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