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치료제이자 백신

인간 만사에서 모든 문제나 비극이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사단 곧 마귀에 의하여 인간 세계에 죄악이 들어와 그것이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손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손되므로 인간에게 시기와 미움과 싸움과 분열, 질병과 고통, 숱한 문제, 불행과 비극 등 부정적인 것들이 빚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인생의 최우선적 과제요 최대의 과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활성화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말씀하고 행동하셨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며,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이루어 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활성화하는 길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나의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예수님의 권좌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을 것이냐라는 문제를 갖고 옥신각신할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의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셨던 종의 길, 사랑과 섬김의 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라고 하는 희생의 길을 갈 수 있느냐라는 말씀입니다.
3세기 동안의 초기교회 시대에는 크게 두 차례의 국제적인 전염병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역병은 AD 165년 겨울에 발생하여 180년까지 15년간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로마제국 인구의 1/4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천연두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두 번째 역병은 AD 249년에 시작되어 262년까지 13년간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시에서만 하루에 5천 명,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도시 인구의 2/3가 죽었다는 보고가 있으며 홍역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역병으로 인하여 처처에서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버리고, 역병에 걸린 사람을 살아있는 채로 매장하는 비극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방 종교의 사제들과 고위층 관리들과 부유한 이들은 도시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감염될 수 있는 상황, 또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형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들에게 영예로운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것이 바로 ‘위험을 무릎 쓰는 자’라고 하는 뜻의 단어인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άνοι)’입니다. 감염될 위험 앞에서도 병든 이교도들과 핍박자들을 돌보았던 기독교인들에 의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건졌고, 그러한 위기상황을 통과하면서 이교도들과 핍박자들은 기꺼이 신자가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이때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이미 ‘21세기는 전염병의 시대’라고 규정했고, 감염병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 14세기 유럽 인구의 1/3 이상을 몰살시킨 ‘페스트의 재앙’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재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와 같은 주장이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 대 확산으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십자가에서 붉은 피를 흘리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 사함 받고 새 생명을 얻었다면, 이제 예수님의 피에 대한 감사, 감격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 그 예수님의 형상을 닮고 이루어 가는 것, 연약한 이들을 섬기는 것이 성도인 우리의 삶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도의 캘커타 슬럼가에서 평생을 섬겼던 마더 테레사 수녀는 “남들에게 섬김을 받고 대접을 받을 때, 거기에는 인간적인 기쁨이 있다. 그러나 내가 이웃을 섬길 때, 거기에는 신적인 기쁨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어떤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으십니까?
히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얼마만큼 사느냐의 기간,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의 소유의 분량은 일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살았느냐, 얼마나 소유했느냐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요삼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영혼이 잘 될 때 육신이 강건할 수 있고, 범사가 잘 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활성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잔존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얼마만큼 회복되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가고 있음을 매일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십니까?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참된 크리스천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활성화 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인생의 모든 문제가 형통케 되고 하나님의 복을 가져오는 비결이요,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약이요,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백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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